(막6:1-6)
내용관찰: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에 놀란다. 하지만 그가 마리아의 아들 “목수”임을 알고는 배척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척하는 고향 사람들에게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만 치유 하시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안타까와 하시며 다른 마을로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신다.
연구와 묵상:
1. 왜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 “목수” 라고 하였는가? 유대 문화는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이기에 “요셉의 아들” 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닐까..하지만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고 표현된 것은 빈정거림으로 예수님의 존재가치를 낮추려는 의도인듯 싶다. 나사렛 사람들은 어렸을 때 부터 보아온 예수님이 그것도 목수라는 지극히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들린 사람을 자유케 하는 등 권능과 말씀의 지혜를 보여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마리아의 아들 “목수” 라 하며 예수님의 사역을 불신하고 배척하게 된다.
2. 예수님께서는 왜 복음을 듣고 권능을 목격하고도 자신을 배척한 고향 사람들을 이상히 여기는가? “이상히 여기셨더라”를 새번역 성경에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로 표현했다.. 누가 ? 예수님께서 !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고 배척한 고향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놀랍다 못해 안타까운 심정이셨을 것이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이기에 누구보다도 복음이 전해 지길 바라셨을텐데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예전에 알고 지냈던 평범한 사람으로만 평가하며 마음 문을 닫아버리니 “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라고 하실 수 밖에! 이렇게 익숙함과 편견에 사로잡히면 예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받을 수가 없게 된다.
느낀점: 내가 결혼을 하고 시할머님을 모셔야 하기에 시댁으로 살림을 합칠 때 남편은 나에게 교회에 가지 말라고 했다. 자신은 지금은 돌아가신 시할머님의 아기 동자 태몽으로 태어났으며 할머니가 한국 선산 근처에 있는 절에 이름을 올려놓고 지성을 드리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 또한 친정이 불교 집안이었기에 그 말에 수긍하며 다니던 교회를 안 다니고 신혼생활을 보냈으니 …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듣고도 배척한 나사렛 고향 사람들이 바로 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수준과 상황에 대한 선입견을 버렸더라면 예수님께서 한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 하신 은혜를 전할 수 있었을텐데… 할머님이 주일에 절에 가시는데 손주 며느리가 교회 간다고 하면 집안에 불란이 일것이고 타국으로 시집 가 있는 딸아이가 잘 적응하며 살기를 바라시는 친정부모님께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생각에 정말 핑계거리도 안되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방해한 행동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열린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은혜를 주셔서 남편이 복음을 듣게 하시고 우리 부부가 고정적인 선입견을 버리면 구원 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셨으니 앞으로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권능을 전적으로 믿으며 복음의 전도자로 쓰임받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결단: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 당하셨지만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듯이 나도 환경이 어떠하든 익숙함과 편견에 피하는 수동적 자세를 내려 놓고 실제적 경험담을 나누며 적극적으로 나아가도록 하겠다
적용: 교회를 떠난 아이들에게 엄마는 또 예수님, 또 교회라는 말을 들어도 지속적으로 마음문이 열릴 수 있도록 기도로 후원하고 G2G 예배, 새생명 축제, 일일 선교 등 각종 교회 행사 초대 메세지를 보내야겠다.
아멘! 결단과 적용이 훌륭하시네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