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9:2-13)
1. 내용 관찰: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예수님이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하얗게 빛났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나타났다. 이에 베드로는 놀라고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겠나이다”라고 말했다.
2. 연구와 묵상
베드로는 왜 예수님께 초막을 짓겠다고 말했을까?
마가복음 9장 6절은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베드로는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을 보고, 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장면을 보며 두려움과 당황스러움 속에서 즉흥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초막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장소로 상징되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머물렀던 장막과도 관련이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완성되었다’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하며 그 영광의 순간에 머무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했고, 하나님의 나라는 고난과 구원의 과정을 통해 완성될 것이었다.
이는 곧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크고 깊은 계획을 보지 못한 채, 현재의 편안함과 만족에 머무르려는 태도와도 연결해 볼 수 있다.
3. 느낀 점
나는 삶 속에서 어떤 ‘초막’을 짓고자 하는가?
나는 직장에서는 서비스 매니저, 가정에서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신앙생활과 더불어 은퇴 후 경제적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인터넷 사업까지 병행하고 있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때때로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변모를 보고 감격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초막을 짓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도 현재의 노력과 계획이 내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신앙적으로 은혜를 경험하면, 그 감동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서 행하시는 뜻을 깨닫고, 그것이 내 일상에 이어지도록 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내가 쌓으려 하는 초막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점검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4. 결단과 적용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려면, 무엇보다 기도와 말씀 읽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 하루의 끝에서 5분 동안 감사 노트를 정리하며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을 돌아보고,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습관을 들이겠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