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1–7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창 21:1)
묵상과 느낀점
하나님은 사라를 돌보셨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주님, 저도 그렇게 고백하고 싶어요. 주님이 제 삶에, 우리 가정에, 자녀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돌보셨고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다는 불안이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들을 품에 안은 사라처럼, 나도 이제쯤이면 웃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정말 그럴 만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자녀들이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 속이 뒤집어진다.
한편으로는 그 아이들을 위해 계속해서 페이먼트하고 돌보는 이 상황이, 때로는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든다.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고, 단지 ‘견디는 믿음’이 아니라 ‘웃을 수 있는 믿음’을 누리고 싶다. 사라처럼, 정말 품에 이삭을 안고 하나님이 주신 기쁨에 웃고 싶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비전이라고 믿고 시작했던 인터넷 사업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길이 맞는 건지 자꾸 의심이 든다. 정말 나를 어디에, 어떻게 쓰시고 싶으신 건지… 요즘은 그 질문이 마음에 자꾸 맴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앞에서 다시 한번 내 마음을 가다듬는다. 하나님은 현실이 아니라 말씀대로 일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사라가 나이 많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이삭을 주셨다. 그 말씀이 오늘 내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를 믿는다.
하나님은 내가 보고 느끼는 현실을 기준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약속대로, 말씀대로, 하나님의 때에 역사하신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기다림이라면, 그냥 견디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는 기다림이 되길 바란다. 사라처럼, 나도 웃을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슬픔을 웃음으로 바꿔주실 것이다. 이삭이라는 이름처럼, 그 기쁨을 꼭 경험하고 싶다.
결단
자녀들에 대해, 내 미래와 사역에 대해 억지로 조바심 내지 않고,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기다리겠다. 지금은 아직 웃을 때가 아니라 해도, 내 입술로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행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하겠다.
그래도 집사님이 능력이 되시니까 자녀들을 품고 계시지요....모두들 건강하고 직장도 다니고 하니까 감사하지요. 좀 힘이 드시더라도 자녀들 밖에 있으면 더 걱정이 되요...ㅎ!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제 주위의 어떤 권사님은 아들 때문에 뒤늦게 횡재했어요. 꾸준한 기도와 사랑을 아직 베풀 시기인가 봐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