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3:14-21 (1/11/2025)
“이러므로”? 누구의 이름? 왜 이름을 주셨나? “영광의 풍성함”이란? 무엇을 성령께서 하신다 하나? “속사람”은 무엇을 뜻하나?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것은 어떤 상태인가? 왜 강건하기를 구하나? 믿음은 어떤 상태를 가져오나? 어떠한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진다“는 무엇인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을 뜻하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나?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은 무엇인가? 왜 그 충만하게 해 주시기를 구하나? 왜 “역사하시는 능력”이라 하나? 왜 교회 안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라 하나? 그 “영광”은 무엇을 뜻하나?
“속사람(Inner self)“? 겉 사람과 속사람? 나의 겉 사람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흔히 사람들을 만나면 나이가 몇이니, 젊었느니 늙었느니를 가늠한다. 나이는 시간이 가면 먹게 되는 것인데 왜 그것을 따지는지. 그래서 나는 바울이 언급한 속사람에 마음이 끌린다. 나의 속사람은 어떤 수준인가? 나의 속사람은 하나님만이 보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닌가? 물론 사람들도 눈치를 채기는 한다. 그러나 지극히 부분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찌 나의 속사람이 강건해 질 수 있을까?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라는 열쇠를 건네준다. 내가 어떻게 성령께 민감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성령을 소멸치 말라“(살전5:19) 나는 어찌할까?
성령 하나님,
나의 속사람을 어찌 강건케 할까요?
나는 어찌하여야 예수 충만을 살수
있을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잠9:10) 하시니 말씀
이신 예수 안에 푹 잠수하도록 성령
하나님 도우소서! 바삐 돌아가는 세상
이기에 QSA website에 올려진 묵상
나눔에 이모티콘으로라도 반응하며
함께 속사람 강건을 추구하는 것은
어떨지요? 나는 예수 충만을 사모
하여 ”충만“ 가사를 묵상해 봅니다.
"무명이어도 공허하지 않은 것은
예수 안에 난 만족함이라.
가난하여도 부족하지 않은 것은
예수 안에 나는 부요함이라.
고난 중에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주의 계획 믿기 때문이라.
실패하여도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예수 안에 오직 나는 승리함이라.
난 예수로 예수로 예수로 충만하네.
난 예수로 예수로 예수로 충만하네
난 예수로 예수로 예수로 충만하네
영원한 왕 내 안에 살아 계시네.
내 몸이 약해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예수 안에 난 완전함이라.
화려한 세상 부럽지 않은 것은
난 예수로 예수로 충만함이라
난 예수로 예수로 예수로 충만하네
세상 모든 것들도 부럽지 않네
난 예수로 예수로 예수로 충만하네
영원한 왕 내 안에 살아 계시네
난 예수로 예수로 예수로 충만하네
세상 모든 풍파도 두렵지 않네.
영원한 왕 내 안에 살아 계시네"
성령 충만이라 하여 이 복음송, "충만"을 금새 떠올렸는데...집사님도 그러셨군요...! 이심전심..
우리의 속사람도 남이 알아 볼수 있도록 성령충만으로 은혜를 끼치면 알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힘쓰고 애쓰고 말씀으로 성령으로 은혜로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