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2:12-18 (8/7/2024)
“그러므로”에 함축된 바울의 마음을 무엇이라 할까? 왜 바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라 했을까? 항상 무엇에 복종하라는 것인가? 무엇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태도를 유지 하라는 것인가? 그것이 구원을 이루는 초석이기 때문인가? 왜 하나님의 소원을 사람에게 주시나? 왜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하는가? 어떤 상태의 세대를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라 하나? 어찌 “흠 없고 순전한 자녀”가 될 수 있을까? 왜 빛으로 세상에 나타내게 된다 하나? “생명의 말씀을 밝혀”란 무엇을 뜻하나? 무엇을 위한 달음질이며 무엇을 위한 수고를 언급하는가? 왜 헛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날”이란 예수 재림의 날을 뜻하나? 바울은 무엇을 자랑하려 하는가? “믿음의 제물”은 무엇을 뜻하나? 왜 바울은 자신을 “전제로 드릴지라도“라는 생각까지 했을까? 왜 joy, rejoice를 바울은 반복 말하는가? 바울의 기쁨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기뻐하라 외치는 바울의 심경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를 실행 할 수 있을까? 바울이 자주 언급하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것인가? 나의 영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칭의를 받았지만 나의 몸과 혼은 여전히 옛사람을 못 벗어버리기에 사탄의 공격을 받고 있지 않은가? 나의 생각, 감정, 의지가 나를 지배할 때 나는 어찌할까? 새롭게 된 내 영이 나의 옛 사람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성화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매순간 의식하고 말씀과 기도로 삼겹줄을 엮어 나를 묶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 아닌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어느 정도에서 만족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견고한 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예수 오시는 그날까지 예수 이름으로 돌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