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3:12-20 (8/18/2025)
왜 에서는 야곱과 함께 동행하고 싶어했나? 완전한 화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같이 갈 수 없다고 한 이유 중에 다른 생각이 야곱에게 있었던 것일까? 숨겨진 다른 진짜 이유가 있었나? 에서가 자기 종들을 야곱의 도우미로 남기겠다 하는데 왜 야곱은 사양한 것일까? 왜 야곱은 뒤쫒아 세일로 가겠다 하고 숙곳으로 간 것일까? 세일과 숙곳은 지도상으로 어디에 위치하나? 왜 야곱이 숙곳에 집을 짓고 외양간을 짓고 머물렀나? 왜 “그 땅을 숙곳이라 불렀다” 하나? 그곳 이름이 이미 숙곳이 아니었나? 왜 야곱은 숙곳에서 가나안 땅, 세겜 성읍으로 옮겨 갔을? 왜 세겜에서 제단을 쌓았나? 왜 그 제단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을까?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곱의 새 이름이 이스라엘.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라 하는 것이 아닌가?
에서와의 아름다운 화해를 통해 언약을 실행하고 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야곱이 아닌가? 사실 벧엘에서 야곱을 만나주신 하나님과의 비밀을 에서가 알 리가 없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이 이루지고 있음을 야곱은 마음 깊은 곳에서 감지하고 있지 않았을가? 에서를 따라가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왜 숙곳이라는 곳에 집을 짓고 외양간을 만들고 그곳에 머물렀던가? 에서와의 만남을 앞두고 초긴장되었던 자신에게 쉼을 주려 했던가? 그러다가 불현듯 야곱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창28:15)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생각났던가? 그래서 가나안 땅 세겜 성읍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인가? 야곱은 마침내 정신이 들었는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다. 언약하신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가슴이 녹아내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는 제단 이름을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부른다.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 이스라엘. 곧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라는 가슴 벅찬 고백으로 그 제단의 이름을 “에에로헤이스라엘”이라 붙이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잊지 말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죄로 범벅이 된 이 세상에서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시18:29)를 내 영으로 선포하며 예수 이름으로 주실 승리를 내 것으로 삼으라 하시지 않는가? 나는 기도 중에 오늘 내가 할 일들을 기억나게 하신대로 노트에 적는다. 그리고 그 일들을 처리할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감당하기로 결단한다. 사실 이 영감도 성령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아닌가? 지나가는 말로 예배를 소홀히 했다는 그의 고백이 내 마음에 걸린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송을 보내며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님이신 것을 잊지 말라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기다리고 계신다 카톡을 보내야겠다.
성령 하나님,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시다니!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나 위해 한 분 아들을 십자가
에 내어 주신 그 사랑으로 나를 안아 주시니 어찌
감당할까요? 기도때마다 나의 영적 현주소를 보게
하시고 먼저 회개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하셔서 정결한 영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소통을
사모하며 실행하게 하소서!

지도 감사합니다...근데 또 잊어버리겠지만요...벧엘로 곧바로 가야 할텐데 왜 세겜을 가서 그런 큰 일을
당했을까요? 망설임없이 세상의 유혹을 등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야함을 도전받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