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깡으로 GO!
창 46:1-27 (10/8/2025)
이스라엘이 떠나? 드디어 이스라엘 역사 시작인가? “브엘세바”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과 교제하던 장소? 왜 그곳에서 야곱은 “희생 제사”를 드렸을까? 약속의 땅을 떠나는 그의 마음이 움츠러들었기 때문인가? “그 밤”은 야곱에게 어떤 밤이었을까? 불확실성과 회의와 초조함과 두려움으로 뒤척이던 밤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이 그의 마음 상태를 보고 계셨기에 야곱을 부르셨던가? 그런데 왜 하나님이 개명하신 이름 이스라엘이라 하지 않으시고 야곱이라 부르시나? 어찌 야곱은 즉각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었나? 하나님을 기대했던 야곱이라서? “나는 하나님이라” 야곱이 아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왜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 하시나? 하나님이 하시는 첫마디, 두려워하지 말라! 야곱의 감정 상태를 꼭 짚어 말씀하시지 않는가? 왜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나?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실 뿐만 아니라 야곱으로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시려고? 그리고 “반드시”라는 light를 켜시고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새끼손가락을 거시지 않는가? 그때 야곱은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언약을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 부둥켜안지 않았을까? 야곱은 온 식솔들과 온 소유물들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을 앞세우고 올테면 와 봐라 거룩한 깡으로 “GO”라 외치며 애굽으로 전진한 것이 아닌가?
성령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도록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계시지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두려움과 번민으로 뒤척이던 야곱을 만나 주신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지요? 바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과 씨름하였다”라는 의미의 이스라엘로 개명해 주셨는데 왜 야곱아 야곱아 부르시나요? 자기 번민에 갇혀 스스로 돌파구를 찾는 옛 야곱의 속성을 보셨나요? 그러나 하나님께 답을 구하며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이길 원하셨지요? 내게도 옛이름과 새이름이 있는 것 아시지요? 하나님은 몇십년전 남편을 통해 내게 Ruth라는 법적 새 이름을 주셨지요? 그래서 나는 예수 족보에 있는 이름이라 농담 반 진담 반 자랑스러워했지요. 그런데 오늘 야곱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내가 과연 새 이름답게 살고 있느냐를 자문해 봅니다. 나는 물론 내 이름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살아난 하나님 소속이요 하나님 딸이건만 나에 갇혀서 야곱처럼 현실에 묶여 씨름하고 있지 않나요? 매일 아침 눈을 뜨게 하시고 하나님의 시간도 내게 빌려주셨지요? 또한 야곱만이 아니라 내게도 언약의 말씀을 주셨기에 그 언약 성취를 위해 걸어가는 Ruth의 발걸음이 되어야 하지요?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시37:31) 하나님의 법을 내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헛걸음을 치는 인생이 아니라 담대한 인생이 되길 원하시지요? 그래서 GIVE팀에게 미션을 위한 기도 제목을 보내도록 나에게 부담을 주셨나요? 성령의 감동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기도의 불로 활활 타게 하셔서 타민족 목사들과 차세대들이 접목되어 예수 이름으로 지구를 덮도록 거룩한 깡으로 GIVE가 GO! 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친근감 있게 야곱이라고 부르신 것 같아요...두려워 하는 야곱에게 네 이름이 이렇지만 내가 너와 함께 한다...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래의 약속을 confirm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