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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본즉, 이제야 깨닫다

창세기 28:6–9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보내어 밧단아람으로 가게 하며,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축복할 때에 그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창 28:6,8)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오래 남았던 구절은 "에서가 또 본즉"이라는 표현이다. 단순히 ‘보았다’가 아니라,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이해하고 깨달았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렇다. 에서는 야곱이 부모의 축복을 받고 밧단아람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이 결혼한 가나안 여인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동안은 자기 뜻대로, 자기가 좋은 대로 결정하고 살아왔던 에서가 뒤늦게 부모의 기준과 기쁨이 무엇인지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다. 그 늦은 깨달음이 "또 본즉"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에서는 뭔가 바꿔보려고 한다. 그래서 가나안 여인이 아닌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맞는다. 얼핏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언약 가문에서 아내를 택하려는 좋은 시도 같아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은 자기 방식이다.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부모의 눈치만 본 채,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결혼이었다. 중심이 여전히 사람을 향해 있고, 자기식으로 회복을 흉내 낸 것이다.


마치 부모가 원하는 모습처럼 보이기 위해 치운 척 청소해 놓고, "이제 괜찮지?" 하고 바라보는 아이처럼 말이다. 행동은 비슷할지 몰라도, 동기와 중심이 다르다. ‘좋아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이었는가? 그 질문 앞에 나도 내 삶을 들여다 본다.   나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 해 놓고, "하나님 보셨죠? 이 정도면 괜찮죠?" 라고 말하는 태도. 그것이 에서와 뭐가 다를까.


진짜 순종은 하나님께 먼저 묻고, 말씀에 따라 결정하는 것임을 안다.  하나님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진심으로 알고 싶고, 그 뜻 안에서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겉모습을 흉내 내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진심으로 구하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로 결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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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tk106
Jul 26

아~~멘! 내가 결정하고 행동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것...이것을 습관화 해야 하는데...여전히 쉽지가 않지요. 깨닫는 것이 한보 앞서 나가는 것이겠죠. 결단에 응원합니다!

SRCC Sa-Rang Community Church 국내선교사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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