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인생
창 41:9-16 (9/12/2025)
술 맡은 관원장이 왜 죄를 지었다 하나? sin이 아니고 offenses? 누구에게 어떤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인가? 히브리 청년의 청을 무시했다는 고백인가? 꿈이 issue가 되자 2년 전 꿈을 해석해 주던 요셉이 후딱 떠오른 것인가? 그리고 그때 절절하게 사정하던 히브리 청년의 얼굴이 생각 나서 술 맡은 관원장의 마음에 가책이 엄습해 온 것인가? 바로에게 그 청년이 그때 해석한 꿈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아뢰자 바로는 지체없이 요셉을 부르라 한다. 하나님의 각본대로 움직여지는 상황이 아닌가? 바로는 요셉을 보자 너는 꿈을 듣자마자 정확하게 해석한다는데 정말이냐며 흥분한다. 그때 요셉의 믿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할까?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필요에 맞게 풀어주실 것이라며 하나님을 드러내며 높여 드린다. 역시...요셉
성령 하나님,
하나님은 요셉을 하나님의 꿈을 위해 부르시는 것이죠? 술 관원장을 한 가닥 희망으로 붙잡던 요셉. 그 희망은 썩은 밧줄이어서 뚝 끊어져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치고 아파하던 요셉 아닌가요? 그러나 그때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은 완벽한 각본을 준비하고 계셨지요? 하나님은 그 요셉을 하나님의 계획안으로 끌어들이신 것이지요? 히브리 종의 신세로 대제국 애굽 왕을 알현할 기회가 올것이라 꿈인들 꾸었겠어요? 찢겨 벗겨진 요셉의 채색옷 대신 노예의 옷이 입혀지고 마침내 죄수옷을 입었던 요셉이 이제는 왕 앞에 나가려 옷을 갈아입지요? 수치와 굴욕과 아픔으로 얼룩진 옷을 후딱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반전의 옷을 입게 되리라 상상이나 했겠어요? 요셉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아싸! 우주의 왕이신 나의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며 떨리는 마음으로 왕 앞에 나가지 않았을까요? 요셉을 기다리고 있던 바로 역시 한껏 기대가 부풀어 요셉을 마치 꿈 해석의 대가로 치켜올리지요? 그러나 왕의 칭송에 손사래를 치며 대신 하나님이 왕에게 답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요셉. 바로의 마음에 하나님이 Lord of lord’s로 부각시키는 작업을 요셉이 시작했다 할까요?
하나님을 드러내는 요셉을 통해 하나님이 부여하신 나의
존재의 의미를 말씀에 비추어 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사43:21)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드러
내시는 하나님께 나는 어찌 순종하고 있나요? 내 삶의
주어는 단연코 하나님이시건만 수시로 고개를 번쩍번쩍
치켜드는 나의 죄성을 용서하여 주소서! 내게 성령을 부어
주시어 나를 이끌고 계시건만 끄떡하면 나의 자아가 고개
를 치켜들지요? 나의 존재의 주어는 내가 아니고 단연코
하나님이신 것을. 나의 입의 말로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지
아니면 내가 주어가 되어 나서고 있는지 내가 나를 감시(?)
하게 하소서! 그 감시를 통과하지 못했으면 후다닥 회개
의 자리에 앉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를 삶으로 살도록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늘 요셉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셨기에 즉시 하나님이 해석해 주실 거라고 답변했겠죠. 무엇을 하던 늘 주님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텐데... 아주 푹 절여지지가 않아서요. 앞으론 더욱 존귀한 옷을 입을 요셉을 그려 봅니다. 귀한 나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