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Spike.
창 43:1-10 (9/26/2025)
가나안에 기근이 심해지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아닌가? 하나님은 이 기근으로 무엇을 계획하시는 것일까?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이 떨어지니 야곱으로서는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먹을 것을 가져오라 할 수 밖에. 그러나 애굽에 다시 가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야곱이 잊었던가?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가? 유다가 답답하다는 듯 나서서 애굽 총독이 내세운 조건을 야곱에게 되풀이한다. 그때 야곱의 심정이 어땟을까? 왜 이때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하나? 이스라엘로 받은 언약 때문에? 왜 다른 아우가 있다고 말했느냐 야곱이 책망한다. 가정 상황을 상세히 언급했기에 일어난 일이 아니냐며 꾸짖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왜 유다가 나서서 자초지종 되풀이 야곱을 설득하는가? 그래도 여전히 꽉 닫힌 야곱의 마음. 야곱의 완강함에 오히려 유다가 패배당했다 할까? 유다, 자기가 담보가 되겠다고? 무슨 뜻인가? 그리고 잘못되면 영원히 죄를 짊어지겠다고? 무슨 죄? 그리고는 야곱에게 속히 결정을 내리라 재촉하고 있지 않은가? 이때 야곱의 마음 상태는 어떠했을까? 완강함이 스르르 무너져 내릴것인가?
성령 하나님,
담보되겠다, 영원히 죄를 짊어지겠다 한 유다에게 야곱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유다의 약속이 내게 메아리 됩니다. 유다의 맹세가 인생들의 죄를 영원히 없이하려 십자가에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들리는 것이 우연일까요? 나의 죄 때문에 담보되신 예수. 내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 죄를 짊어지신 예수. 나의 상태는 어떤가요? 야곱처럼 나를 가두어 두고 있는 일종의 완강함이 무너지고 있나요? 나조차 깨닫지 못하도록 나를 속이는 나의 죄의 속성. 그래서 말씀에 담으신 하나님의 마음과 내 영혼이 spike를 일으키는 것인가요? 나의 인본주의가 산산조각이 나고 왕이신 하나님의 사고체계가 나를 장악하도록 말씀 안으로 나를 부르시는 것이지요? 나를 하나님의 공주로 입양시키시려 고난과 고통을 감내하신 사람, 예수 그리고 부활하신 하늘의 왕, 그분의 순종의 댓가로 이 땅에 나를 하늘 대사로 파견하셨지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2:5-6) 나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동역자로 삼으시려 내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인가요? 내가 당하는 고난과 아픔이 나를 담보해 주신 하나님의 찐한 사랑인 것을 내 가슴에 담게 하소서! 풍랑을 거치지 않으면 에덴의 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없어 나를 인생 훈련장으로 몰아내 나를 깍으시고 다듬으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내가 붙잡게 하소서! 나를 강타하는 시련 속에 나를 홀로 던져 놓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아파하시며 고통당하시는 그리스도의 담보가 말씀 안에서 나를 안아주고 있지요? 나 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예수. 내게 진정한 행복을 알라시며 마침내 복을 주시려 나의 영혼에 박아 놓으신 예수 이름을 사랑하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계시니 거친 인생의 파도가 밀려와도 “올 테면 와 봐라!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담대함으로 나가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친히 회복하고 계시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하시려고요? 나의 사고체계를 100% 하늘 것으로 바꾸어 주시려 야곱을 통해 나를 보게 하시는 것이지요? 역시 말씀이 영혼의 Spike. 로마서 통독이 나를 붙잡게 하소서!


결국은 유다가 나서서 자신을 담보로 내세우며 야곱을 설득시킨다. 어느 정도 시간도 흘렀고 야곱의 완강했던 마음도 조금은 연약해진 상태에서 유다가 실마리를 가져다 준다. 꽉 막힌 것 같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은 어떤 계기와 일을 만드셔서 헤쳐 나갈 길을 주신다. 예수님의 우리의 중보자로서 몸소 자신을 희생하시어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 주셨다. 우리 주 예수님만이 문제의 해결자! 참 중보자이심을 감사하며 찬양하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