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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인생

창 50:15-21 (10/23/2025)


왜 형들은 아버지의 장례식 후에 요셉이 앙갚음할까 두려워했던가? 요셉의 권력에 압도당했던가? 자기들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한 회의 때문인가? 왜 아버지가 형들의 죄를 용서하라 했다 핑계를 대는가? 왜 “전하여”? 형들이 직접 요셉을 대면하지 못할 정도로 두려웠던가? 왜 요셉은 죄를 용서해 달라는 형들의 말을 전해 듣고 울었을까? 왜 형들은 마침내 요셉에게 와서 엎드려 자기들이 종들이라 하나? 요셉 앞에 엎드린 형들. 요셉 꿈의 마지막 장이라 할까? 왜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어찌 요셉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 할수 있었나? 이때 형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왜 요셉은 형들과 자녀들도 책임지겠다 하나? 어찌 요셉은 절절한 마음으로 형들의 두려움을 보듬어 안아 줄수 있었나?

     

성령 하나님,

요셉과 형들의 대조적인 영적 상태를 보여 주시려는 것인가요? 형들은 요셉의 용서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요? 요셉이 확실하게 약속했건만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불안해하지요? 왜 그럴까요?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 세상의 통념에 형들이 절여져 있기 때문인가요? 반면에 요셉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황을 보는 영적 시야를 얻었지요? 형들이 소유한 세상의 가치관과 요셉의 영적 가치관의 대립이라 할까요? 나는 어느 가치관으로 살고 있나요? 형들의 세상 가치관인가요? 요셉의 하나님 나라 가치관인가요? 사실 세상에서 두 가치관은 마찰을 일으킬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내게는 선택이 필요하지요? 내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나의 정체성과 분리될 수 없지요? 나의 영적 상태에 따라 선택이 이루어지겠지요? 내가 영으로 사는가 혹은 나의 혼으로 사는가의 결정이라 할까요? 내가 누구를 용서하고 아니하는 차원이 아니라 나의 영의 거듭남이 답이지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6-7) 내가 형들처럼 불안해하며 살것이냐 요셉처럼 영의 사람으로 완전한 용서자로 살것이냐에 대한 답이지요? 나의 혼과 육이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지만 나의 영이 하늘의 가치관으로 승격되어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하시는 것인가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자”에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마18:35)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나의 물질을 가져가 심적으로도 힘들게 하는 그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잠깐 살아가는 이 세상에 빠져 자신의 악함을 돌아보지 못하고 마귀에게 쓰임 받는 그를 오히려 불쌍히 여기게 하소서! 속히 그가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토해내게 하소서! 이 일을 통해 나를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내 가슴에 담게 하소서! 그를 위해, 그 일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그 일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차원이 다른 인생으로 나를 이끄시고 내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니 송구하고 황공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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