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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만 사는 인생

창 32:23-32 (8/15/2015)


왜 야곱은 “홀로” 남았을까? “어떤 사람”은 누구인가? 씨름이라 하나? 왜 야곱을 이기지 못했나? 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을까? 몸에서 허벅지 관절의 역할은? 왜 “그 사람”이 보내달라 하나? 왜 야곱은 축복해 주어야 보내겠다 억지를 부리나? 왜 이름을 물었을까? 왜 새 이름 이스라엘을 주었나?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라? 왜 야곱은 “당신의 이름”을 알려 달라 하나? 왜 야곱이 축복받은 후 그 장소를 브니엘이라 할 생각을 했을까? 그때에야 하나님을 대면한 것을 깨달은 것인가? 왜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하나?

     

야곱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을 대물림받을 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책임 져 주실 인생인 것을 야곱은 얼마나 섭렵하고 살아내고 있는가? 야곱은 형 에서를 대면할 상황이 두려워 심히 헤메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시고 씨름을 하신다. 어떤 씨름인가? 에서를 만나면 무엇이라 할까? 형의 비위를 어떻게 맞추어 볼까? 자기 생각과 계획과 꽁수로 머리가 복잡하여 깊은 고민에 빠진 야곱의 자아를 깨뜨리시는 씨름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의 옷을 입혀 주시는 하나님. “또 가라사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33:20) 때문에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야곱은 결국 하나님을 대면하였다는 깊은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게 된 것이 결국 야곱에게 축복이라는 것을 야곱은 숙지했기에 야곱은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그 장소에 영적 기념비를 세울 수 있지 않았던가?

     

나의 현실은 어떤가? 혹 야곱과 같은 상황을 직면하고 있다면 과장일까? 이제 “나 홀로” 대면해야 하는 인생의 길목에서 나의 영적 상태는 어떠한가? 내가 해결해야 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이 현실 속에서 나의 영혼이 오직 하나님의 얼굴만 구하라 하나님이 내게 씨름을 걸어오고 계신 것은 아닌가? 야곱처럼 하나님 조차 이겼던 나의 자아의 “허벅지 관절”을 어긋나게 하시려 하는가? 나의 옛 자아 곧 내 허벅지 관절이 절뚝거리는 “축복”을 주시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결심하신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은 내게 속삭이고 계신 것인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신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내가 무슨 자격이 있어 내 가슴이 절절이 녹아내릴 것 같은 이런 고백을 하나님이 내게 들려 주시는 것인가? 나의 둔부의 힘줄이 어긋나도록 하나님은 나의 은근한 교만, 고집불통, 자아 만족의 우상들을 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지 않으면 살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남도록 실상은 나를 보듬어 안고 계신 것이 아닌가? 나의 옛사람이 아닌 예수로 사는 인생 만드시려 사실 하나님이 나보다 더 힘을 쓰고 계신 것이 아닐까?

     

성령 하나님,

내 가슴이 예수만으로 절절하게 하소서!

예수로만 사는 인생되도록 축복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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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tk106
Aug 16

예수로만 사는 인생 아멘입니다!

SRCC Sa-Rang Community Church 국내선교사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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