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 (Bare Face)
창 44:1-13 (10/1/2025)
요셉은 왜 또 돈을 각자의 자루에 넣으라 하나? 아직도 형들을 시험해야 해서? 청년, 베냐민의 자루에 넣을 은잔이 요셉에게 답을 줄 것인가? 애굽 총리 집에서 후한 대접을 받은 후 양식을 잔뜩 싣고 아버지 집을 향해 가는 형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들을 억누르던 두려움은 줄행랑치고 이제 휘파람을 불며 희희낙락 아닌가? 그런데 갑지기 눈에 불을 켜고 “선을 악으로 갚는다” 호통을 치며 그들 앞에 나타난 청지기. 웬 날 벼락인가? “이것”이라니? 총리가 마시며 점 치는데 쓰는 것“이라? 어안이 벙벙! 하지만 형들은 정신을 수습하고 조심스럽게 주여! 결코 아니라 손사래를 치고는 지난번 자루에 있던 돈도 가지고 온 것을 아시지 않느냐 그런데 은잔을 도둑질하겠느냐고 결벽을 주장하는 당당한 모습이 아닌가? 그리고는 발견된 자루의 주인공은 죽이고 나머지는 종들이 되겠다고? 그런데 왜 청지기는 발견된 자는 종이 되고 나머지는 무죄라 말을 바꾸나? 청지기가 자루를 하나하나 풀어 볼때 형들은 자신만만했겠지. 그런데 아뿔사! 베냐민의 자루에서 그 은잔이 나오다니. 예상외의 상황에 맞딱드린 형들은 참담함으로 옷을 찢고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요셉에게 해를 주던 그 형들이 아니지 않은가? 요셉이 기대한 형들의 변화된 모습이 연출된 것인가?
성령 하나님,
요셉의 빵빵한 지혜가 빛을 발한다 할까요? 형들과 베냐민. 참으로 간만에 식탁에서 화기애애한 가족적 분위기 아닌가요? 그때 요셉이 자신을 드러낼 수도 있지 않았나요? 그러나 요셉은 여전히 초강대국 애굽의 총리로 앉아 있지요? 요셉은 형들의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으로, 하나님을 위해 형들의 민낯을 보고자 했던가요? 형들이 여전히 요셉을 팔 때의 간악한 마음으로 시기와 미움으로 도배되었는지 알고 싶었나요? 은잔 시험을 청지기에게 시키고 뒤에 남아 있던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쿵쾅거리지 않았을까요? 형들이 과연 변화되었을까? 형들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일까 서성거리며 하나님께 질문했을까요? 막내 동생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온 은잔. 형들은 분노와 슬픔을 감당 할수 없다는 듯 옷을 찢지요? 그리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성으로 돌아가고 있지요? 형들의 변화된민낯이 드러났지요? cell phone 시대가 아니니 청지기는 요셉에게 근황을 카톡으로 보낼 수도 없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형들의 민낯을 훤히 보고 계셨지요? 본심을 알고자 했던 은잔 시험을 형들이 통과했지요?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인생들의 본심을 다 알고 계시지요? 나도 모르는 나의 민낯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지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사43:21) 특히 내가 예배의 자리에 나갈 때 내게 주신 회개의 비누로 먼저 내 민낯에 붙어있는 오물들을 씻어내게 하소서! 나를 예수의 피로 살리셔서 내게 영원한 생명 주신 거룩하신 하나님께 거룩을 올려 드리는 예배자가 되도록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변화된 형제들...청지기의 말대로 베쟈민만 죄의 댓가를 치루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죄가 되는 것을 알아 들었지만 그들은 옷을 찢으며 다같이 성으로 돌아 간다. 확실히 변화된 태도이다. 아버지와의 약속도 있었지만 더 이상은 죄를 짓지는 않겠다고....거의 90% 이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