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거룩한 과제
창 42:26-34 (9/24/2025)
가나안으로 향하는 형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시므온을 감옥에 남겨둔 채 막내를 애굽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는 무게감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던가?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경악할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여는데 돈이 들어 있다니? 형들은 왜 돈을 보자 두려워하는가? 이때 왜 형제들은 와들와들 떨며 어찌하여라며 하나님을 찾았을까? 마침내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식한 것인가? 요셉을 팔 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가? 요셉이 가두었던 3일간의 감옥에서 이들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던 형들이 아니었나? 가나안에 도착한 그들은 어떤 상태였나? 애굽에서 있던 일을 야곱에게 상세히 설명하면서 왜 요셉을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라 하나? 요셉의 권위에 형들이 왕창 겁을 집어먹은 것인가? 요셉에게 했던 말을 낱낱이 야곱에게 알려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시므온과 베냐민 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중차대한 중압감에 눌려서인가? 정탐군이라 뒤집어 쓴 누명을 벗어나 확실한 자라 증명해야 한다 야곱을 설득해야 했기 때문인가? 시므온은 볼모로 감옥에 잡혀있고 이제 막내아우를 데려가야 하니 상황을 야곱에게 토로할 수 밖에 없지 않았던가? 형들은 자기들의 정체가 증명이 되면 애굽에서 상거래도 하게된다 덧붙인다. 요셉이 언제 그런 제안을 했던가? 아들 둘이 연계되었기에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형들이 꼼수를 쓰는 것 아닌가? 그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볼수는 없었을까?
성령 하나님,
요셉을 팔던 때와는 전혀 다른 형들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계시지요? 요셉 사건에서는 일말의 찔림도 없이 야곱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나요? 그러나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서 형들의 잠자던 양심을 슬며시 깨우고 계시지요? 하나님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던 그들이 코앞에 벌어진 황당함 앞에서 “하나님이 어찌하여”라 하며 마침내 하나님을 의식한 것이지요? 야곱의 자손들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경종이지요? 하나님 앞에 죄를 죄로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정황, 자기들 처지, 감정에만 충실하던 형들. 그러나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28:14) 야곱에게 하신 돌 베게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마음을 쏟아 야곱 아들들을 흔들고 계시지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던 형들이 붙잡던 죄성이 지푸라기들처럼 와르르 무너지기 직전이지요? 나는 그들의 상태를 보며 내가 무엇을 의식하고 무엇을 붙잡고 사는지 질문합니다. 무엇에 초점하여 나는 말씀을 묵상하나요? 말씀 속에 담으신 하나님 마음인가요? 나는 진정 하나님의 마음과 접촉되어 있나요? 보석처럼 말씀 속 깊이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캘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나의 열심이 아니라 내게 부어주실 예수 갈망의 마음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이지요? 성경뿐 아니라 요지경 세상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 마음을 읽기 원하시지요? 한국 방문 중인 친구가 들려준 오산리 기도원에서의 불붙는 기도 현장 얘기를 들으며 나는 한국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접촉이 되는듯 합니다. 성경뿐 아니라 내가 사는 미국, 그리고 전세계 뉴스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고 계시지요? 창조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마음 알아(Yada) 가는 것을 나의 평생의 거룩한 과제로 삼게 하소서! 내게 영적 분별력을 주시고 영의 눈과 귀가 열려 하나님 마음, 내게 꼿히게 하소서!

죄책감과 죄의식 속에서 마음 속 깊이 감추어 놓았던 아픔...을 끄집어 내야만 했던 형들...벧엘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과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했던 야곱이었지만 현실적으론 아픔을 갖고 살아야만 했던 연약한 한 인간...어런 것들을 모두 극복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치유하심과 회복시켜 주심이 있어야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네요. 모든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